가능성은 스스로 만든다
7월 15일(토) 이화여대에서 <가능성은 스스로 만든다>는 제목으로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Tadao Ando, 이하 안도 다다오)의 강연회가 열렸다. 지난 3월 30일(목) 서울대학교 강연에 이은 특별 강연회로 뮤지엄 산에 새롭게 마련된 명상관 ‘빛의 공간’의 소개도 더해졌다.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과 함께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가득했던 그의 강연을 요약 및 정리하여 공유한다.
강연 내용
100세까지 사는 시대
건강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목표를 갖고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 교육은 물론 건축 관련 전문 교육도 받지 못했습니다.
제가 15살 때 저희 집을 2층으로 증축하게 되었는데 당시 옆집의 목수가 끼니도 거른 채 즐겁게 일하는 것을 보고 ’건축이란 참 재밌있는 모양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 저는 줄곧 건축 관련 일을 하고 있고, 즐겁게 일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저 사람은 전문 교육을 받지 않았어”, “보나 마나 형편없는 실력이겠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저는 즐겁게 일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여러분은 즐겁게 살고 계신가요?
저는 정말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두 번의 수술
지난 10년 사이에 저는 두 번의 큰 수술을 했습니다.
담낭, 담관, 십이지장, 췌장, 비장 등의 장기를 모두 떼어냈습니다.
이제는 학력도 없고, 내장도 없습니다만, 사회와 함께 하면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목표는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사회를 위해 각자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주시기 바랍니다.
이화여대 ECC
이화여대의 ECC는 저의 친구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가 설계했습니다.
저는 그와 1982년부터 교류하고 있는데 서로가 있는 곳을 오가며 만나고 있습니다.
물론 여러분의 부모님도 소중하지만 친구와 주변인들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혼란한 지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이고, 터키는 지진으로 피해를 입었습니다.
세계에 에너지, 자원, 식량이 부족한 상황이니 어떻게 보면 지구는 한계의 상황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들도 이 지구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건축 여행의 교훈
저는 20대 초반이던 1965년, 러시아를 통해 유럽에 갔다가 마르세유를 거쳐 아프리카를 일주 한 후 일본으로 돌아왔습니다.
로마의 판테온 상층부에서 내려오는 빛을 보면서 큰 감명을 받았고, 이 여행을 통해 ‘지구는 하나’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당시 마다가스카르를 통해 인도양을 건널 때 배 위에서 좌선하는 승려들을 만났습니다.
몇 시간을 같은 자세로 앉아있으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하는데 물을 끼얹으면 다시 일어나더군요.
이 때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인생을 제대로 한 번 살아보자 마음 먹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도 기회가 있습니다.
자유와 용기만 있다면 인생은 정말 즐거운 것이라 느낍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호기심입니다. ‘뭔가 재밌는 일 없을까’라는 생각을 계속하면 상당히 많은 일들이 실로 재밌어집니다.
보통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과정을 교육이라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나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진정한 교육입니다. 결국 교육이라는 것은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오사카에 구타이미술협회(具体美術協会)가 있는데요.
방 전체를 기호로 채운다거나 정수리 사진을 촬영해 머리에 투영시킨다든가 하는 특이한 작품들을 전개하는 겁니다.
천장에 매달린 상태에서 발로 그림을 그리던 어떤 화가는 8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런 방식을 고수했습니다.
파리를 무대로 활동하는 화가 한 분은 캔버스에 연필로 그림을 그린 후 다시 검정색을 덧칠하는 작품을 제작해오고 있습니다.
그의 아틀리에를 종종 방문하는데 제가 이유를 묻자 ‘안도 상에게는 검게 보일지 모르지만 제 눈에는 때때로 핑크색으로 보입니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여러분 머리가 한계에 다다를 정도로 간당간당(ぎりぎり) 해야 합니다.
건축가의 삶
초창기 오사카(大阪) 우메다(梅田)의 좁은 대지(45㎡)에 부부와 아이까지 세 명이 생활할 수 있는 주택을 설계했습니다.
그런데 그 부부에게 쌍둥이가 태어나게 되어 공간이 좁아졌고, 결국 제가 지은 건물을 제가 매입했습니다.
그 후 여러 차례 증축을 거쳐 사무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20대 때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작품집을 구입하게 되었고, 책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 사무소 내부는 계단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온통 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러분 스마트폰 절반 정도만 사용하고, 책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유일무이(唯一無二)
나오시마(直島)라는 섬은 오카야마 현(岡山県)에 있는 곳으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합니다.
이 섬의 소유자인 후쿠타케 소이치로(福武總一郎)씨는 아무리 멀거나 가기 힘든 곳이라도 이곳만의 유일한 무언가가 있다면 사람들이 찾아 올 것이라며 세계 최고의 미술관을 만들자고 저를 설득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지중미술관(地中美術館, Chichu Art Museum)입니다.
지난해 나오시마에 새롭게 설치한 작은 건물에는 지붕의 작은 틈으로 아름다운 빛이 들어가는데요.
우리가 자연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이런 모습들을 통해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현재는 일본 담배협회 회장님이 소유하신 쿠사마 야요이씨의 구체 작품이 천 개 정도 배치되어 새로운 경험을 선사합니다.
처음 뮤지엄 산의 설계를 의뢰 받았을 때도 사람들이 이렇게 먼 곳까지 올 리가 없다며 거절했지만 이인희 고문께서는 사람들이 올 수 있는 건축을 해야지 않겠냐고 하시더군요. 제가 미술관의 입구에 거대한 조형물을 설치하자고 제안했을 때도 바로 찬성해주신 강한 여성이셨습니다.
저는 예전에 오사카 나카노시마(中之島, Nakanoshima)의 중앙공회당 내부에 달걀 모양의 건축물을 집어넣자고 제안했지만 거절 당했습니다. 새로운 무언가를 품어내고, 부화하기를 바랐는데 말이죠.
프랑스 파리에는 미야케 이세이(三宅一生, Issey Miyake)씨가 파리 첫 패션쇼를 런칭했던 부르스 드 코메르스(Bourse de Commerce)라는 공간이 있습니다.
저는 이곳을 보았을 때도 외관은 남겨둔 채 원통형 공간을 집어넣고자 했습니다만 파리 시장과 프랑스 대통령이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국 해냈습니다.
여러분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려면 인내해야 하고, 공부해야 하며,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함께하는 삶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는 어린 시절 전보 배달을 하며 힘겹게 공부했던 경험을 잊지 않고, 훗날 미국 전역에 천 여 개의 도서관을 지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저도 우리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 나카노시마에 어린이 도서관인 코도모혼노모리(こども本の森)를 지었습니다.
처음에는 오사카 시의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도서관도 짓고, 주변의 차도도 없앴습니다.
이후 이와테현과 고베, 방글라데시, 네팔 등에 어린이 도서관들을 짓고 있습니다.
이렇게 도서관을 짓다 보면 언젠가 사람들이 스마트폰 대신 책을 읽고 지식을 축적하면서 본인의 가족, 지역사회, 세상에 도움을 주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러분 각자 할 수 있는 일들을 조금씩 해나간다면 90억 명이 살아도 문제없는 지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여기 계신 여러분들 중 몇 분이라도 지구 온난화와 더불어 지구 자체를 생각하고, 자신의 문화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명상관 ‘빛의 공간’
뮤지엄 산으로부터 한국에서만 존재하는 아무도 본 적 없는 공간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새로운 공간은 상부의 십자가에서 빛이 내려오는데 이를 통해서 지구를 생각하고, 여러분이 살고 계신 지역을 생각하고, 한국을 통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인재가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안도 다다오의 <청춘> 전시
강원 원주시에 위치한 뮤지엄 산에서는 3월부터 안도 다다오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으며, 10월 29일까지 전시 기간을 연장했다.